2025년 9월 26일 · 버킷리스트

Butterfly

Mariah Carey 2025 Shenzhen

Butterfly

버킷리스트 1호

버킷리스트를 적으면서 그중 가장 쉽게 이룰 수 있겠다 싶었던 항목이다. 기회만 생기면 바로 낚아챌 마음의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그 와중에 들려온 소식. 머라이어 캐리가 중국에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직 머라이어 캐리 공연 하나만을 위해 중국, 선전에 가기로 했다.

회사 동료들에게 중국에 여행 간다고 하니 다들 은근 말리는 눈치였다. 이유를 물어보면 조심스럽게 “화장실”과 “담배”를 꺼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미 머라이어 캐리 중국 콘서트 VIP 티켓을 손에 넣은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중국에 가야만 했다.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구글맵 등 한국에서 평소 많이 쓰는 온라인 플랫폼들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에 머릿속이 까마득해졌지만 최근 중국여행을 다녀왔다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중국 방문에 필수적인 어플을 설치하고 카드 설정등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생동안 염원했던 머라이어캐리 콘서트에 다녀오면 뭔가 쏟아낼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돌아와 보니 이상하게도 글로 쓰고 싶은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몇달동안 진전없이 끄적거리기만 하다가,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완성하기로 목표를 정했다.

찜질 문화의 선구지

선전은 한국으로 치면 여의도 같은 포지션을 맡고 있다고들 한다. 사전 조사 차 찾아본 인터넷에서는 ‘현실판 사이버펑크 도시’라며 네온빛으로 가득한 골목 영상으로 잔뜩 홍보를 해댔고, 나는 그 이미지를 머릿속에 꽉 채운 채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 공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간 곳은 내가 예약한 5성급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바닥 여기저기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역시 역사가 긴 나라라서 온돌/찜질 문화가 발달했나 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챗지피티의 힘을 빌려 그들이 들고 있는 푯말을 찍어 보니, 체불 임금 점검 시위 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 지점부터 나의 중국여행이 하락 곡선으로만 이어질까봐 두려웠다. 도시 곳곳에서는 쩌든 담배 냄새가 났고,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심지어 내가 묵은 호텔 객실 안에서도 담배 냄새가 났다. 환풍구를 통해 다른 객실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가 그대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호텔 로비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투숙객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호텔에서는 체불 임금 시위 때문에 경찰이 출동해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챗지피티로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대충 번역해 가며 보고 있는데, 예전에 나도 체불 임금을 당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남 일 같지가 않았다. 동시에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이런 시위의 장면을 실제로 보게 되네’ 하는, 약간 무지에서 오는 놀라움도 함께 있었다. 그래서 시위 중인 직원들을 지지할 겸, 그리고 나도 기분 좋게 묵고 싶어서 호텔을 환불받고 5성 리조트 호텔로 옮겼다. 새 호텔로 갈 때는 객실에서 담배 냄새가 나면 그 즉시 투숙을 무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다.

Shenzhen

새로 옮긴 호텔은 정말 감탄이 나왔다! 그때 깨달았다. 돈과 함께라면 정말 쾌적하고 아름다운 중국 여행을 다녀올수있구나! 조금 더 비싼 음식, 조금 더 관리 잘 된 시설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화장실이나 담배 냄새 문제는 거의 사라졌다. 대중교통을 어떻게 탈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택시비가 워낙 저렴해서 ‘그냥 택시타면 해결된다’는 마인드로 모든 이동을 해결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물가가 한국보다 낮다 보니, 같은 돈을 쓰더라도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한 단계 위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다.

Mariah Carey

머라이어 캐리는 화려한 보컬 실력 때문에, 정작 본인의 음악 대부분을 직접 작사·작곡·프로듀싱한다는 사실이 종종 가려지곤 한다. 하지만 그의 예술성은 작사·작곡에서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서전과 여러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많은 일화를 직접 풀어놓는다.

그중 가장 대표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가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의 작곡 비화다. 현대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앨범을 만든 사람이지만, 정작 그는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화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소속사는 끊임없이 앨범 작업을 강요했고, 거의 녹음실에 가두다시피 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한여름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며, 자신이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크리스마스를 상상하며 가사를 써 내려갔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멜로디를 그려 나갔기 때문에, 아이가 건반을 장난치듯 오르내리는 단순한 구성의 곡이 탄생했다. 그에게 곡을 쓴다는 건, 결국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직접 건네는 위로 같은 행위였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카탈로그에는 비관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을 믿고 버텨내겠다는 흐름을 가진 음악이 유독 많다. 나 역시 그의 음악을 찾아 들을 때, 그 속에서 위로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분명 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Celebration of mimi (12집 발매 20주년 투어)

12집 ‘The Emancipation of Mimi’는 음반업계의 로비에 연속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가 빛을 발한 앨범이다. 그런데 바로 이 해에, 머라이어 캐리는 어머니와 친누나를 동시에 잃는다. 하루 사이에 가족 두 명을 떠나보내고도 그는 예정되어 있던 월드 투어를 강행했다. 무대 위의 표정은 이전보다 확실히 더 어두웠고, “애도를 위해서라도 이 투어를 잠시 멈추어야 한다”는 걱정과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살다 보면 큰 경사와 큰 비극이 이상하게 겹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애도와 축하를 양극단에 놓고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

This is a triumph!

“They’ve got to give us a celebration – that’s just all there is to it.”

공연 내내 스타디움 안으로 장대비가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좌석을 포기하고 지붕 아래로 들어갔다. 빗물이 눈두덩이와 속눈썹을 타고 줄줄 흘러 내려와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어려웠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라운드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 상황이 오히려 더 특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라운드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과 같이 즉석 떼창을 하기도 했다. 5년전 내가 군대에서 비를 맞으며 야간훈련을 받을때 숨죽여 불렀던 노래와 같은 노래였다.

I can make it through the rain
I can stand up once again on my own
and I know that I’m strong enough to mend
(〈Through the Rain〉, 2001)

그들은 분명히 머라이어 캐리의 가사들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살다가 비구름을 마주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삶을 만끽하려는 태도만큼은 놓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Butterfly

머라이어캐리의 디스코그래피에서, ‘해방’이라는 주제는 반복해서 등장한다. 12집 앨범에서는 ‘해방’을 대하는 삶을 자세를 노래했다면, Butterfly 7집 앨범을 통해서는, 사랑하기에 놓아주는 해방을 노래한다.

Fly abandonedly into the sun

현실자각

타이틀 곡 ‘Butterfly’의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자는 나비를 놓아주겠다고 말하지만, 곧이어 자신이 그 나비처럼 날아가는 입장으로도 말한다. 한쪽에서는 손을 펼쳐 보내고, 다른 쪽에서는 날개를 펴고 떠나는 시점이 겹친다. 이 노래에서 나비는 단순한 ‘상대방’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화자가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 사람에게 어떻게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자기 마음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대상과 사랑을 갈망하는 자아가 포개져 있는 상징에 가깝다. 너무 소중한 나머지 손에 꼭 쥐고 있으면, 손바닥에 패인자국이 남기 마련이다. 머라이어캐리는 스스로에게 되새기듯이 노래한다. 사랑한다면 어떻게든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을 펼쳐 날아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봐 줄 수 있어야 한다고.

Hero

You don't have to be afraid of what you are

Verse 1

You can find love, if you search within yourself

Verse 2

내가 어린 시절, 어려운 일을 마주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가 와서 나를 구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초등학생 때,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집 문은 늘 잠겨 있었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계단에 앉아 기다리는 날이 많았다. 엄마가 언제 올지는 항상 달랐다. 어느 날은 계단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열릴 리 없는 집 문고리를 붙잡고 “엄마”만 불렀다. 결국 그 자리에서 더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바지에 실수를 했다. 바지가 천천히 젖어 내려 바닥에 고이고,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내가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옆집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해 씻기고 입을 옷을 챙겨줬다는 기억만 또렷하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도 엄마는 나에게 열쇠를 주지 않았다. 친구들 집에 있는 전자식 도어락이 그렇게 부러웠다.

You can find love, if you search within yourself

Verse 2

머라이어 캐리에 대한 나의 첫 기억도 비슷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빠는 영어 팝송을 즐겨 들었고, 그 음반들을 주말 아침 늦잠 금지용 소음처럼 틀어놓곤 했다. 반쯤 잠들어 이불 속에 파묻혀 있을 때, 머라이어 캐리의 ‘Hero’ 가 배경으로 흘렀다. 내 무의식 속 가장 오래된 사운드트랙 같은 존재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어려운 일이 생기면 ‘Hero’ 가사를 떠올리곤 했다. 사실 그때는 가사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따라 불렀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어린 나에게는 스스로 해결할 힘, 이른바 ‘영웅 같은 힘’이 없는 게 너무 당연했으니까. 그 시절 내게 도움은 항상 외적으로 찾아와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에게 의존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그렇기에 관계에서 상실을 건강하게 다루지 못했고, 누군가를 잃는 일은 곧 죽음에 이를 것 같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런 나에게 “사랑한다면 떠나보내야 한다”는 식의 가사는,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 정반대에 서 있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지금도 겁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소중한 것을 쥔 손을 펼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도, 그것을 놓아보내더라도 삶을 잘 헤쳐나갈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을 향한 믿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나를 구해 줄 용기를 가진 사람은 사실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다만 내가 보지 못했을 뿐, 내 안에 있었다.

이제는 그 믿음에 기대어,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문장을 반복하는 대신 “그렇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할까”라고 이어갈 수 있는 용기를 조금씩 연습해 보고 싶다.

오랫만에 꺼내든 붓

나비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나

There was a little boy that all he wanted was a butterfly. So he got a butterfly net and went outside started swinging. But with no luck, he sat down on the ground, he finally let go and surrendered. He was okay he wasn’t going to capture this beautiful butterfly. And right when he did, is when the butterfly came and landed right on the tip of his n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