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terfly
Mariah Carey 2025 Shenzhen
버킷리스트 1호
애플 뮤직 Replay 2025
애플 뮤직 Replay 2024
버킷리스트를 적으면서 그중 가장 쉽게 이룰 수 있겠다 싶었던 항목이었다. 기회만 생기면 바로 낚아챌 마음의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그 와중에 들려온 소식, 머라이어 캐리가 중국에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직 머라이어 캐리 공연 하나만을 위해 중국, 선전에 가기로 했다.
회사 동료들에게 중국에 여행 간다고 하니 다들 은근 말리는 눈치였다. 이유를 물어보면 조심스럽게 “화장실”과 “담배”를 꺼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이미 머라이어 캐리 중국 콘서트 VIP 티켓을 손에 넣은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중국에 가야만 했다.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구글맵 등 한국에서 평소 많이 쓰는 온라인 플랫폼들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에 머릿속이 까마득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최근 중국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부탁해 중국 방문에 필수적인 앱들을 설치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잔뜩 받아냈다.
일생 동안 염원했던 머라이어 캐리 콘서트에 다녀오면 뭔가 쏟아낼 말이 많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 보니 이상하게도 글로 쓰고 싶은 말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진전 없이 끄적이기만 하다가,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어떻게든 완성해서 포스팅하자는 마음으로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다.
찜질 문화의 선구지
막 도착한 나를 반기던 푯말
경찰 등장
챗지피티 짱
모든 곳에서 담배쩐내가 난다
선전은 한국으로 치면 여의도 같은 포지션을 맡고 있다고들 한다. 사전 조사 차 찾아본 SNS 영상들은 ‘현실판 사이버펑크 도시’라며 네온빛으로 가득한 골목 영상을 잔뜩 내세우고 있었다. 그 이미지를 머릿속에 꽉 채운 채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 공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간 곳은 내가 예약한 5성급 호텔이었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바닥 여기저기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역사가 긴 나라라서 온돌/찜질 문화가 발달했나 보다’ 하고 엉뚱한 상상으로 넘겼다. 하지만 챗지피티의 힘을 빌려 그들이 들고 있는 푯말을 찍어 보니, 체불 임금 점검을 요구하는 시위 중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 지점부터 이번 중국 여행이 내리막 곡선으로만 이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도시 곳곳에서는 쩌든 담배 냄새 피부가 따끔따끔 찔렀다. 심지어 내가 묵은 호텔 객실 안에서도 담배 냄새가 났다. 환풍구를 통해 다른 객실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가 그대로 들어오는 것이 분명했다. 호텔 로비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투숙객을 일부러 열심히 째려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호텔에서는 체불 임금 시위 때문에 경찰이 출동해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챗지피티로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대충 번역해 가며 보고 있는데, 예전에 나도 체불 임금 문제로 경찰서를 오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 일 같지가 않았다. 동시에 ‘공산주의 국가에서 시위가 가능하구나’ 하는, 무지에서 비롯한 놀라움도 함께 있었다. 그래서 시위 중인 직원들을 지지할 겸, 호텔을 환불받고 해외 브랜드 리조트 호텔로 옮기기로 했다. 새 호텔에서 담배 냄새가 나면 그 즉시 투숙을 무를 환불원정대의 마음가짐을 단단히 준비해 두었다.
Shenzhen
디자인 스튜디오가 모여있는 단지
영화에 나올 법한 골목길
텅텅빈 쇼핑몰이 도시 곳곳에
관람열차
근두운
글씨가 예쁘다
새로 옮긴 호텔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돈과 함께라면 정말 쾌적하고 아름다운 중국 여행을 다녀올 수 있구나. 조금 더 비싼 음식, 조금 더 관리 잘 된 시설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화장실이나 담배 냄새 문제는 거의 사라졌다. 대중교통을 어떻게 탈지 머리 싸맬 필요도 없었다. 택시비가 워낙 저렴해서 “그냥 택시 타면 해결된다”는 마인드로 대부분의 걱정을 처리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물가가 한국보다 낮다 보니, 같은 돈을 쓰더라도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한 단계 위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다.
Mariah Carey
머라이어 캐리는 늘 화려한 보컬로 먼저 기억되지만, 사실 그의 예술성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그의 작사·작곡 능력이다. 자서전과 여러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곡들이 어떤 경험과 감정에서 시작됐는지를 꾸준히 증언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가 바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의 탄생 비화다. 현대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앨범을 만든 당사자이지만, 정작 그는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화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본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당시 소속사는 끊임없이 결과물을 요구하며 자신을 녹음실에 가두어 놓았다고 털어 놓았다.
한여름의 스튜디오 안에서 그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며 ‘가져본 적 없는 크리스마스’를 상상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선율을 더해 갔고, 떄문에 아이가 건반을 만지작거리듯 단순하게 오르내리는 구조의 곡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에게 곡을 쓴다는 일은 결국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이 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는 비관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을 믿고 이겨내겠다는 흐름을 가진 음악이 유난히 많다. 나도 그의 음악을 찾게 되는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그 속에서 어떻게든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분명히 섞여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슬슬 모여드는 관람객들
공연장 개조 이후 첫 공연이라고
귀청 찢어지는 줄
Celebration of mimi (12집 발매 20주년 투어)
머라이어 캐리의 디스코그래피에서 ‘해방’이라는 주제는 여러 모습으로 반복 등장한다. 12집 The Emancipation of Mimi에서는 억압적인 음반 업계, 대중의 기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자신을 옥죄던 요소들에서 벗어나 어떤 태도로 삶을 마주할 것인가 선언한다. 그 결과 상업적 성공은 물론이고,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역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앨범의 발매 20주년을 기념하는 월드투어를 앞둔 차에 머라이어 캐리는 어머니와 친누나를 연달아 잃는다. 하루아침에 가족 두 명을 떠나보내고도 그는 예정되어 있던 월드 투어를 강행하는데, 무대 위의 표정은 이전보다 확실히 더 어두웠고, “애도를 위해서라도 투어를 잠시 멈추어야 한다”는 걱정과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해방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가족의 상실을 애도하면서도 무대에 선 그의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만끽하고 현재를 살아내겠다는 해방의 자세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2025년 5월 10일 선전 공연
This is a triumph!
“They’ve got to give us a celebration – that’s just all there is to it.”
살다 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이상하게 동시에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그렇다고 애도와 축하를 양극단에 놓고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연 내내 스타디움 안으로 장대비가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좌석을 포기하고 지붕 아래로 몸을 피했다. 빗방울이 눈두덩이와 속눈썹을 타고 줄줄 흘러 내려와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어려웠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라운드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비에 젖어가는 그 시간이 삶의 모든 희노애락을 관통하는 특별한 순간으로 다가왔다.
Butterfly
이 곡 하나만 듣고 나왔어도 본전 뽑은 격
Blindly I imagined I could keep you under glass. Now I understand to hold you I must open up my hands and watch you rise
7집 Butterfly에서는 사랑과 상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해방을 노래한다. 타이틀 곡 ‘Butterfly’의 ‘Butterfly’의 가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떠나보내는 자와 떠나가는 자, 두 개의 시선이 교차하며 그 속에 화자 자신의 ‘위태로운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즉, 나비를 쫓는 행위는 사랑을 갈망하는 것인 동시에, 무너지는 자아를 붙잡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한 것이다.
너무 소중한 나머지 손에 꼭 쥐고 있으면, 손바닥에 패인 자국이 남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머라이어 캐리는 상실의 두려움에 매달리는 대신, 손을 활짝 펴 나비를 날려 보낸다. 붙잡지 않더라도 사랑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되내이면서, 사랑이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지 정면으로 마주한다.
Hero
There’s a hero if you look inside your heart, you don’t have to be afraid of what you are
You can find love if you search within yourself, and that emptiness you felt will disapear
내가 어린 시절, 어려운 일을 마주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가 와서 나를 구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초등학생 때,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집 문은 늘 잠겨 있었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계단에 앉아 기다리는 날이 많았다. 엄마가 언제 올지는 항상 달랐다. 어느 날은 계단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열릴 리 없는 집 문고리를 붙잡고 “엄마”만 불렀다. 결국 그 자리에서 더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실수를 했다. 바지가 천천히 젖어 내려 바닥에 고이고,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해 씻기고 입을 옷을 챙겨줬다는 기억만 또렷하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도 엄마는 나에게 열쇠를 주지 않았다. 그 시절, 친구들 집에 있는 전자식 도어락이 그토록 부러웠던 이유이다.
머라이어 캐리에 대한 나의 첫 기억도 비슷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빠는 영어 팝송을 즐겨 들었고, 그 음반들을 주말 아침 늦잠 금지용 소음처럼 틀어놓곤 했다. 반쯤 잠들어 이불 속에 파묻혀 있을 때, 머라이어 캐리의 ‘Hero’가 배경으로 흘렀다. 내 무의식 속 가장 오래된 사운드트랙 같은 존재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어려운 일이 생기면 ‘Hero’의 가사를 떠올리곤 했다. 사실 그때는 가사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따라 불렀던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어린 나에게는 스스로 해결할 능력, 이른바 ‘영웅 같은 힘’이 없는 게 너무 당연했으니까. 그 시절 내게 도움은 항상 외부에서 찾아와야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에게 의존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그렇기에 관계에서 상실을 건강하게 다루지 못했고, 누군가를 잃는 일은 곧 세상이 무너지고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한의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런 나에게 “사랑한다면 떠나 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식의 가사는,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정반대에서 온 말처럼 들렸다.
나는 지금도 겁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이 소중한 것을 쥔 손을 펼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스스로를 향한 믿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그 믿음에 기대어,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문장을 되풀이하는 대신 “그렇다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할까”라며 더움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연습해 보고 싶다. 내가 어릴 적부터 찾아 헤맸던 그 사람은 사실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다만 내가 보지 못했을 뿐, 내 안에 있었다.
고양이와 나비
SHENZHEN 호텔에서
오랫만에 꺼내든 붓
나비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나
버킷리스트 1호 달성!
I made it through the rain!
There was a little boy that all he wanted was a butterfly. So he got a butterfly net and went outside started swinging. But with no luck, he sat down on the ground, he finally let go and surrendered. He was okay he wasn’t going to capture this beautiful butterfly. And right when he did, is when the butterfly came and landed right on the tip of his nose.